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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occernews 2008-06-13 08:40:48
제        목   [서서가는 유로기행] ④ 안첼로티부터 벵거까지‥길에서 만난 명장들

[편집자주] '축구 전문 뉴스의 보고(寶庫)' 스포탈코리아는 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 펼쳐질 '6월의 미니 월드컵' 유로2008의 뜨거운 현장에 국내 매체로는 유일하게 두 명의 전문 기자(서형욱 편집장, 서호정 기자)를 파견해 생생한 소식을 전합니다. '서서가는 유로기행' 코너에서는 두 명의 서 기자들이 번갈아가며 현지 분위기를 연재할 예정입니다.



[스포탈코리아=베른(스위스)] 서호정 기자= 유로 2008은 축구 판 보물찾기다. 대회의 즐거움을 수준 높은 경기를 관전하는 데만 한정 짓는 것이 오히려 손해다. 월드컵과 올림픽 다음으로 규모가 크다는(한때 국제육상선수권이 세계 3대 스포츠행사로 알려졌지만, 유러피언 비즈니스지에 따르면 지난 유로 2004부터 이미 시청자수, 경제 규모에서 뛰어 넘어섰다) 이 국제 대회가 주는 선물은 곳곳에 숨어 있기 마련이다. 때론 우연찮은 장소에서, 혹은 가장 어울리는 장소인 축구장에서 말이다.

이런 큰 대회를 취재하는 기회를 잡게 된 축구 기자 입장에선 가장 큰 보람은 세계적인 축구인들을 눈 앞에서 직접 보고 만난다는 것이다. 유럽 역시 4년 마다 열리는 이 최고 레벨의 경기를 직접 관전하기 위해 각국의 감독, 선수들이 스위스와 오스트리아로 몰려들었다. 인상적인 것은 낯선 아시아 기자가 다가가도 언제나 열린 자세로 대화에 응해준다는 점이다.

행운은 비처럼 한번에 쏟아진다고 했던가? 지난 11일 스페인과 러시아의 경기를 취재하기 위해 찾은 인스부르크에서 유로 2008의 선물이 빵빵 터졌다. 하루 사이에 무려 5명의 세계적 감독들을 만났던 것. 내 축구 지식이 짧아 그냥 스쳐버린 이들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는 얼굴들이 눈에 띌 때마다 가슴은 벌렁벌렁 뛰고, 머리 속으로는 “혹시 아니면 어떡하지?” 싶은 걱정이 뒤섞이는 복잡한 상태는 어쩌면 연애의 감정 이상에도 비유할 수 있겠다.

가장 인상적이면서 당황스러웠던 만남은 AC밀란을 8년 째 장기집권하고 있는 카를로 안첼로티 감독이었다. 놀랍게도 그를 만난 곳은 인스부르크로 향하는 12번 고속도로 인탈 아우토반의 옆길이었다. 서형욱 편집장과 나는 인스부르크로 가기 위한 루트로 스위스로부터 5시간이 넘는 장시간운전을 택했다. 스위스 산길을 지나오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공사를 만나 시간을 빼앗겨 조급해진 나머지 고속도로에서 속도를 낼 수 밖에 없었고 인스부르크 진입을 불과 20여 분 남겨두고 오스트리아 교통경찰들에게 잡히는 불운(?)을 겪고 말았다.

그런데 그 불운이 행운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1분 1초가 아까워 시간을 보고 있는데, 교통경찰의 인도 하에 차 밖으로 나갔다가 면허증과 여권 등을 챙기러 왔던 서 편집장이 다가와 말했다. “저기 안첼로티 아냐?” 멍한 상태에서 고개를 돌려보니 한 은발의 아저씨가 벌금을 내고 있었다.

편집장을 걱정하는 척(미안!) 차에서 내려 슬쩍 쳐다보니 정말 안첼로티가 맞는 듯 했다. 하지만 소심한 내겐 확신을 갖기 위한 검증 작업이 필요했고 은발 아저씨가 벌금을 내고 차로 돌아가자 경찰에게 “저 사람 이름이 뭐요? 혹시 카를로 안첼로티 아니던가요?”고 물어봤다. 그때 돌아온 경찰관의 대답이 걸작이었다. “어디 봅시다. 카를로 안첼로티 맞는데, 아는 사람입니까?”

경찰관의 답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었다. 안첼로티가 맞다면 무조건 잡아서 뭐든지 물어야 했다. 차 안에 있던 카메라를 후닥닥 챙기고, 자신의 애마 아우디로 걸어가는 안첼로티를 붙잡았다. 안첼로티가 영어를 하는지는 모르지만, 내 짧은 영어를 이해나 할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질문을 던지고 카메라를 들이댔다.

서: “당신, 미스터 안첼로티?”
안: “그렇소만.”
서: “나 한국에서 온 축구 기잔데 사진 한 장 찍어도 되겠습니까?”
안: (고개만 끄덕.)
서: (사진 찍으며) “인스부르크 가는 길인가 보죠?”
안: (역시나 고개만 끄덕.)

과속 딱지 때문에 기분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사진 찍자고 달려온 한국 기자가 얼마나 어이 없었을까. 뭔가 뚱한 표정의 안첼로티에게 더 말을 걸었다가는 한국에 대한 이미지를 버릴까 싶어 그만 그를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차 안에는 그와 함께 한 동행자의 모습도 보였다.

서: “(유로 2008 ID 카드를 보여주며) 나도 취재하러 인스부르크 갑니다. 경기장에서 봅시다.”
안: (살짝 웃으며 또 고개만 까딱.)

나중에 확인한 사실이지만 안첼로티는 전날 베른에서 조국이 네덜란드에게 충격적인 0-3 패배를 당하는 것을 아들 다비드와 함께 지켜봤다고 한다. 그도 우리 일행처럼 차를 몰아 인스부르크로 향하다 변(?)을 당했던 것이다. 당시 고속도로의 제한 속도가 130km였는데, 최소 140km는 넘었다는 얘기다. 안첼로티 감독, 급하면 헬리콥터를 타지 그랬수(안첼로티의 아내는 헬리콥터 조종 자격증이 있습니다!)라는 측은함도 들었지만 (스포탈코리아 편집장과 달리) 천하의 밀란 감독에게 벌칙금쯤이야 어디 대단하기나 하겠는가.

안첼로티가 떠난 뒤에도 여전히 교통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며 어떻게든 벌금을 낮춰 외화 유출을 막아보겠다던 서 편집장에게 나는 “찍었어요! 찍었어요!”라며 환한 미소로 달려갔다. 인정사정 없이 부과하는 것으로 소문난 유럽의 교통 벌금을 감수하면서도 서편집장과 나는 그 사진을 보며 키득거리기 바빴다. 그 와중에도 오스트리아 경찰들은 안첼로티를 굴욕의 늪으로 집어 넣었다. 즐거워하는 우리를 보며 “안첼로티가 누군데 그러는 거요?”라며 되묻는 그들의 얼굴을 보며 축구의 엘도라도 유럽, 그것도 유로 2008을 공동개최하는 나라에 대한 의문 부호를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날의 감격적인 장면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안타까운 대패를 보고 미디어 센터를 나오는 내 눈에 들어온 것은 껑충한 키와 유달리 높은 코를 갖춘 또 다른 은발 신사였다. 그 은발 신사만큼은 내 눈을 의심할 필요 없이 확신을 갖고 외쳤다. “아르센 벵거!”

벵거만이 아니었다. 지난해 말 한국대표팀 감독 후보로 언급됐던 제라르 울리에 UEFA 기술분석위원장이 특유의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앞서 가고 있었다. 벵거의 옆에는 유로 96을 정복했던 독일의 명장 베르디 포그츠가 얘기를 주고 받고 있었다. 그 뒤에는 전 애스턴 빌라 감독인 요세프 벵글로스 FIFA 기술연구팀장도 있었다. 과거 대한축구협회 초청 세미나에서 만난 적이 있었기에 한눈에 알아보자 두툼한 서류가방을 들고 가던 벵글로스도 돌아보며 웃음을 지어보였다.

마침 주차장으로 향하는 그들과 우리 일행의 방향이 같아 수십 미터를 함께 할 수 있었다. 포그츠는 걷는 내내 벵거와 그날 경기에 대한 얘기를 주고 받는 듯 했고, 알자스 지방 출신인 벵거도 유창한 독일어로 답하고 있었다. 최근 아스널 소속 선수들의 이적설로 바람 잘 날 없는 벵거 감독이지만 유로 스포츠의 해설자로 현장에는 꾸준히 출석하고 있다. 알려졌다시피 벵거 감독은 최근 영입한 애런 램지의 마음을 사로 잡기 위해 직접 비행기를 보내며 스위스로 초대하는 정성을 쏟기도 했다. 한 가지 일도 하기 힘들다는 데 감독에 스카우트, 해설자까지 1인 3역을 하는 벵거 감독을 보며 진심으로 존경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그 순간 눈이 마주치자 벵거는 짧은 눈인사와 친절한 웃음으로 자신의 팬의 마음을 사로잡아버렸다.

이번 대회에서 만난 또 한 명의 유명 축구인은 마르셀 드사이다. AC 밀란의 스카우트로 재직 중인 드사이는 이번 대회에 <비비씨>를 비롯한 다수 매체의 해설가로 참가 중이다. 은퇴한 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현역시절 별명이었던 ‘더 록(바위)’에 걸 맞는 탄탄한 체격을 갖춘 드사이는 인터뷰를 요청하는 기자에게 “다른 매체를 위해 이번 대회에 온 지라 인터뷰는 안 된다. 대신 사진만이라면 OK”라며 정상급 매너를 보여주기도 했다. 다만 내게 보낸 마지막 질문만 아니었다면.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북쪽인가, 남쪽인가. 나 남쪽은 2번이나 가 봤는데."

사진= (위로부터 시계방향) ①유로2008에서 해설자로 나선 아르센 벵거ⓒAPF/멀티비츠/스포탈코리아 ②속도위반 과태료 부과 현장에서 만난 카를로 안첼로티ⓒ스포탈코리아 ③스포탈코리아 취재진을 반갑게 맞이한 마르셀 드사이ⓒ스포탈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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